<타나토스>ㅡ프로젝트 퍼스널카시 '날 것' 의 움직임

홍대 / 연극

연기가 아닌 살아 있는 ‘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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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프로이트에 의하면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나 자신의 몽상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미학적 쾌락을 제공하여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을 유희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 예술을 통해 잠시 동안이라도 긴장을 해소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신앙, 성적쾌락, 이완의 상태와도 비슷하다.

내가 좋아하는 오쇼라즈니쉬의 투리야(turiya) 같은 4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조건이 있다. 그것을 하는 행위자든 관객, 독자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틈(empty space), 빈 공간이라고도 불리우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든 것들의 틈 사이에서 충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틈이 있어야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시작되고 끝나고 그 틈 사이에 우리는 계속 신선한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 틈을 잘 이용하는 예술가가 그 몽상을 사유로 바꾸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틈을 증명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 취미는 의식하지 않는 틈 사이에 존재하는 인물들을 몰래 엿보는 것이다. 살아있는 현존하는 틈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움직임을 엿본다. 엿보는 나를 그가 보면 그 틈은 바로 무너진다. 스스로 틈을 막으려고 하기에 말이다.

그 순간에도 틈은 현존하고 있으나 유희의 세계에 나와 버렸기 때문에 그것이 증명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샤워를 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누군가 엿보기를.

나는 매일 매일 그 틈에서 살아있는 공연을 하고있다. 그리고 나는 불을 꺼놓고 하루에 한 번 창밖을 엿본다.

이렇게 공연자와 관객과 일정의 틈 사이에서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나 자신의 내면의 충격과 충동으로 인하여 기득권과 세상이 규정해 버린 성공한 모습 때문에, 개개인의 창의성과 목표가 내것이 아닌 세상이 바라보는 1등의 관점이 옳다고 믿고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들을 이 공연을 통해 나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내면의 거울을 비추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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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노트


우리가 고찰하는 타나토스(죽음의 충동)는 인간의 광기, 잔혹함과 처절한 갇힘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 내면의 눈물 그리고 그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의 작업이 잔혹하거나 더럽다고 느끼는 짓거리를 통하여 도대체 왜 저런 짓을 할까? 관객들이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의문으로 끝난다면 우리의 작업은 실패다.

그 잔혹함과 광기 속에서 왜 인간이 저럴 수 밖에 없는가, 그 라이브 같은 몸부림으로 한 인간에 연민을 느끼고 관객들 스스로 마음의 눈물을 흘리기를 바란다. 이로인해 마음이 정화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 정화의 통로 과정이 우리 무대의 순간이 되길 바란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가 어려운 이웃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다.

눈에 가장 좋은 약은 눈물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성적으로 그 눈물을 막으려고 하는가! 그것이 혹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 때문은 아닌가.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면 그 눈물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다. 눈물을 흘리면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각자만의 느낌으로 씻겨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마음에도 눈물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관객이 얼굴에 흘리는 눈물을 목표로 몸 짓과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각 개인의 관객마다 눈물이 날 수도 있지만 그 눈물의 첫 번 째 본질도 마음의 눈물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타나토스 작업은 영상, 사진 작가와 집중 협력하여 전체적인 공연자의 내면적 모습과 인간의 몸 확장을 미디어와 사진을 통해 함께 세상의 변증법을 사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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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소개


프로젝트 퍼스널 카시는 연출 김크도 중심으로 각 집단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더 깊은 인간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실험적인 연극적 요소를 중심으로 서울, 유럽, 일본 등 페스티벌 초청공연 및 세계 오지 여행을 통해 다각적 시각을 경험한 예술가들이 신체를 이용하여 현대 미술의 간극과 인간의 내적 본질 간극의 틈 사이에서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과 함께 다원적인 철학을 사유하려고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다.

2012년 서울 상암동에 개인 예술 작업실을 열어 영상, 사진, 현대 미술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끊임없이 예술교육 연구, 신체훈련, 토론, 독서를 하며 열심히 현대예술 공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또 우리 작업은 살아있는 날 것을 추구한다. 연기가 아닌, 실제 내 몸의 구석 구석 숨어있는 아주 작은 핵심의 호흡과 내적 자아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몸을 괴롭히며, 날 것의 행위, 그 순간, 그 공간,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를 마시며 신선한 움직임과 호흡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적인 목표다. 그 것을 진실되게 관객들과 서로 잘 나누기 위해 훈련중이다.

타나토스 작품은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작에 선정이 되어 공연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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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와 같은 마음 그리고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놀이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회적 의식, 주변의 의식에 사로 잡혀 나의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는 왜 그래야 하는가?

조건을 만들어주어 실험을 하고 싶다. 어른이 되어도 우리 마음 속에는 아이의 즐거움이 남아있다. 그것을 일깨워 주고 싶다. 관객과 함께 무궁화 놀이를 한다. 그리고 화면으로 찍는다. 앞에 실시간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배우들이 등장하여 무궁화 연극 놀이를 보여준다. 어린아이는 모든 것이 눈에 신선하기 때문에 무언가에 꽂히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것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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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경험을 명백히 해 주는 구분은 사실 다른 곳, 즉 과학과 예술의 역할 차이에 있다. 과학은 누가 파란색 같은 감각들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누가 느낄 수 없는지를 가려내고 왜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설명한다. 반면 예술은 동일한 능력을 가진 개인들 사이에서 느낌을 전달한다. 다른 말로 하면 과학은 느낌을 설명하는 반면 예술은 그것을 전달한다.


에드워드 윌슨 저 <통섭> 中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 이게 중력이구나

공장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아 이게 자본이구나

우리가 느낄 수 있듯,

우리의 내면을 보고, 아 이게 내 진짜 모습이구나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상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과 사용 방법은 늘 다르다. 아이들을 보면 언제나 즐겁다. 부럽다.

포스트모던이란 근대 속에서 표현 그 자체 속 현시 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것은 적합한 형식으로부터 생기는 위안을 거부하고, 불가능한 것에 대한 향수를 공동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취미의 합의를 거부한다. 그것은 새로운 표현들을 찾는다. 그렇지만 이런 것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시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더욱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서이다.

포스트모던적 예술가나 작가는 철학자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의 텍스트와 작품은 근본적으로 기존 규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이런 텍스트와 작품은 이미 알려진 범주들을 이런 것에 적용함으로써 규정적 판단에 의해 판단될 수 없다.

이런 규칙들과 범주들은 오히려 저 작품이나 텍스트가 찾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적 예술가와 작가들은 아무런 규칙도 없이 그리고 만들어질 것의 규칙들을 만들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작품과 텍스트는 사건의 성격을 가지며, 그것들은 또한 그 작가들에게 항상 너무 늦게 나타나며, 혹은 같은 말이지만 그것들에 대한 작업은 항상 너무 일찍 시작된다.

따라서 포스트 모던이란 -전- -미래- -과거- 라는 패러독스로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하늘의 줄을 당겨도 하늘이 내려오지 못 함은 하늘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온전히 믿지 않는 우리들의 마음이 무겁기 때문인 것 같다. 내 마음이 가볍다면 줄을 당기지 않아도 하늘은 나에게 평안과 용기를 내려 줄 것이다.

분명히 사유하자. 작은 참새 한 마리는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다. 대한항공 사장도 그렇게 날아다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들 영혼의 자유는 시 공간을 초월하여 날아다닐 수 있다. 줄을 당기려는 마음이 없을 때 말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누구나 아프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다. 온 하늘이 존재의 무덤이라면, 온 땅이 존재의 관이라면, 그 존재의 무게는 같을텐데.

보이지 않는 곳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다. 우리는 왜 그 것을 향해 서로 싸우지 않고 보이는 것들에만 목숨걸고 싸우는 것일까. 어차피 우리는 같은 무덤 속에 사는 그저 그런 인생이고, 다 그저 그러다 결국엔 같은 무덤 공간에서 빈손으로 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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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설공주와 난장이를 실제로 보았다.

믿으면 보이인다.

나만의 동화를 간절히 찾아라.

누군가 손가락질 하더라도 말이다.

결국 세상은 올바른 이기적임으로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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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바라본다. 꽃이라는 것은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변함없이 똑같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꽃은 어느시대에나 조건없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고민한다. 있는 그대로의 예술을 시대와 상관없이 사랑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꽃이 되고 싶다. 나는 인간 꽃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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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스


죽음으로 가는 충동, 정신분석학에서 '죽음을 지향하는 본능'을 지칭하는 말.


인간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면을 가리킨다. 또한 넓게 보자면 '죽고 싶어하는 본능'역시 타나토스에 속한다. 정확히 말해 '자기 자신을 생명이 없는 무기질로 환원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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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인간이 왜 저럴 수밖에 없는가?

무용 예술과는 다른 비언어적 움직임!

연기가 아닌 살아 있는 날 것


저희의 공연은 아방가르드 사운드 음악과, 각종 오브제, 신체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공연 작업을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구성은 실험적인 장면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으며, 예를 들어 어떠한 오브제(정수기)가 있다면 원래 그 물건의 용도로 오브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무대에 있는 공연자와 관객이 중간 틈 사이에서 충동으로 인하여 각자만의 사유를 추구 할 수 있도록, 그 오브제를 실험적으로 사용 하고 있습니다.

또 한 우리의 작업들은 살아 있는 날 것 을 추구 합니다. 연기가 아닌, 실제 내 몸의 구석구석 숨어 있는 아주 작은 핵심의 호흡과 내적 자아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몸을 괴롭히며, 날 것의 행위, 그 순간, 그 공간,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를 마시며 신선한 움직임과 호흡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적인 목표 입니다.


물을 담는 그릇에 따라 물의 모양은 바뀌지만 물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물의 본질은 생명이다.’

<타나토스> 는 새로운 시도로 인하여 그로테스크 하기도, 시각적 표현이 충격 스럽기도 하지만, 개인의 본질, 그 생명을 생각 할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예술입니다. 좁은 시야와 자유스럽지 않은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유행을 잠시는 내려놓아야 내가 비로소 보일 것 같습니다. 내 모습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세상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저희 공연을 통해 각자가 스스로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내가 생각 하는 것이 정답이라면 정답이라는 자아의식 감성훈련을 통해 오로지 안정된 직장을 위해서만 온 젊음과 인생을 소비하는 우리네 인생에 각자의 마음속에 혁명적인 불꽃이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나의 본질을 사랑하면 네 이웃을 섬길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더 좋은 사회 그리고 더 좋은 국가가 되지 않을까요? 보여주고 싶은 <타나토스> 광기나, 잔혹함, 처절한 갇힘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 내면의 눈물 그리고 그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음입니다.

저희의 작업이 잔혹 할 수도, 더럽다 느끼는 짓거리를 통하여 관객들은 '도대체 저런 짓거리를 왜 할까?'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문으로 끝이 난다면 우리의 작업은 실패입니다. 그 잔혹함과 광기 속에서 왜 인간이 저럴 수밖에 없는가? 그 라이브 같은 몸부림으로 인하여, 한 인간의 연민을 느껴, 관객들 스스로 마음의 눈물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관객들 마음이 정화되기를 바랍니다. 그 정화의 통로의 과정이 우리 공연이 되길 바랍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가 어려운 이웃들의 고통적인 삶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곤 합니다. 눈에 가장 좋은 약은 눈물이라 의사들이 말하곤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지만, 각자만의 느낌으로 씻겨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마음에도 눈물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관객이 얼굴에 흘리는 눈물을 목표로 몸짓과 소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각 개인들의 관객마다 눈물이 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 눈물의 첫 번 째 본질도 마음의 눈물부터 출발이라고 생각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인간의 따듯하고, 온유한 것들의 그 전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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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의: 프로젝트 퍼스널카시 

사이트 이용 및 결제 관련 문의: 크라우드티켓 07088194308

        공연장
        포스트극장
        위치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148
        공연날짜
        2017. 12. 12 ~ 2017. 12. 15